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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눈으로 포착한 인류의 나약함과 숭고함, 장르의 형식을 뒤흔든 영화 이터널스 리뷰

by 크로니클스 2026. 5. 18.

2021년 개봉하여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전체 역사상 가장 극명한 호불호의 갈림길에 섰던 문제작, 영화 이터널스(Eternals) 리뷰입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 석권한 클로이 자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개봉 당시 평단과 기존 마블 팬덤 사이에서 거대한 논쟁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하며 리드미컬하게 질주하던 기성 마블의 성공 공식을 과감히 해체하고, 그 자리에 거대한 우주적 존재론과 아날로그 미장센을 채워 넣은 이 영화의 서사적 도전과 명암을 깊이 있게 해석해 보겠습니다.


영화 기본 정보

  • 원제: Eternals
  • 개봉일: 2021년 11월 3일 (한국 기준)
  • 장르: SF, 액션, 판타지, 히어로, 드라마
  • 러닝타임: 156분
  • 감독: 클로이 자오 (Chloé Zhao)
  • 출연: 젬마 찬, 리처드 매든,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쿠마일 난지아니, 셀마 헤이엑, 로런 리들로프,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
  • 평점: ★★★☆ (3.5 / 5.0)
  • 한줄평: 팝콘 무비의 유쾌한 장막을 걷어내고 광활한 대자연과 고독한 신들의 시선으로 인류의 본질을 응시한, 마블 역사상 가장 이질적이고 웅장한 신화적 비극.

줄거리 & 시놉시스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절대적 존재 '셀레스티얼'에 의해 창조되어 7,000년 전 지구에 파견된 10명의 초인적 존재 '이터널스'. 이들은 인류를 위협하는 포식자 괴물 '데비안츠'를 처단하고 문명의 발전을 뒤에서 묵묵히 돕는 수호자의 자격을 이행합니다. 단, 셀레스티얼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데비안츠가 개입하지 않는 인류의 역사적 전쟁이나 비극에는 절대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제약을 짊어집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고 데비안츠가 멸종하자 이들은 지구 각지에 흩어져 인간의 틈새에서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벤져스: 엔드게임 당시 블립된 인류가 한순간에 부활하며 발생한 거대한 에너지가 지구 내부의 셀레스티얼을 부활시키는 '출현(Emergence)'의 트리거를 당기게 됩니다.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기 위해선 지구와 인류 전체가 말살되어야 한다는 잔혹한 신의 계획(창조를 위한 파괴)을 깨달은 이터널스는, 창조주를 향한 맹목적인 복종과 7,000년간 지켜봐 온 인간을 향한 애정의 갈림길 위에서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거대한 신념의 내전에 휩싸입니다.


냉정하고 솔직한 감상 후기

1. 슈퍼히어로 무비의 문법을 해체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독립 예술 영화적 연출'

이터널스가 대중으로부터 "지루하고 낯설다"는 혹평의 직격탄을 맞은 가장 큰 원인은 영화의 리듬감과 미장센에 있습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CG) 스튜디오의 매끄러운 가상 스크린을 거부하고, 황량한 사막과 노을빛이 부서지는 실제 대자연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아냈습니다.

 

영웅들의 화려한 시그니처 포즈나 속도감 넘치는 대규모 액션 시퀀스 대신, 인물 간의 긴 침묵과 건조한 대화, 그리고 고독한 감정선의 변화를 천천히 따라갑니다. 마블 고유의 말장난 유머와 화려한 팝콘 톤에 길들여진 대중에게, 매 씬마다 스며있는 자연광의 비장미와 철학적 사색의 시간은 대단히 낯설고 이질적인 '독립 예술 영화'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장르의 정형화된 틀을 깨부수고 신들이 인간을 바라볼 때 느낄 법한 아득한 세월의 무게감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낸 연출적 시도만큼은 독보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2. 156분의 러닝타임을 압박한 '방대한 정보량'과 서사의 산만함

단일 텍스트로서 지닌 가장 뼈아픈 구조적 한계점은 서사의 분산입니다. 단 한 편의 단독 솔로 무비 안에서 관객이 난생처음 마주하는 10명이라는 수많은 주연 캐릭터들의 서사와 정체성, 이들의 7,000년 역사적 전사, 셀레스티얼의 우주 기원론까지 전부 한꺼번에 설명하고 납득시켜야만 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타임라인을 어지럽게 오가는 교차 편집 구조 속에서 개별 캐릭터의 감정적 결핍과 고뇌는 촘촘하게 축적되지 못하고 파편화되어 겉돕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감정 교류보다 세계관의 거대한 설정을 브리핑하고 상황을 수습하는 데 진도를 빼다 보니, 2시간 36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내러티브의 밀도가 군데군데 헐거워지는 구조적 패착을 낳았습니다.

3.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PC)' 담론이 남긴 명암

이 영화는 마블 유니버스를 통틀어 가장 진보적이고 과감한 인종적·사회적 다양성을 화면에 이식했습니다. 아시아계 여성 리더(세르시), 청각 장애인 영웅(마카리), 성소수자 가장(파스토스) 등 인류 문명의 시작점부터 함께해 온 신들의 모습을 다채로운 인간의 자화상으로 상정했습니다.

 

그러나 이 훌륭한 기획 의도 역시 내러티브와 유기적으로 녹아들지 못할 때 독이 될 수 있음을 영화는 고스란히 노출합니다. 인물들의 정체성이 서사 속에서 주체적인 행동과 개연성으로 증명되기보다, "우리는 이토록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과시하려는 듯한 평면적인 배치의 인상을 풍기며 관객들 사이에서 과도한 PC주의라는 소모적인 논쟁적 호불호를 자아내는 아쉬운 불씨를 남겼습니다.


심층 해석 및 명장면 분석

1. 가장 강인했으나 지독하리만치 인간적이었던 영웅, 길가메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만해지기 쉬운 다국적 영웅들의 틈새에서 영화 전체의 정서적 중심추를 아주 단단하게 틀어쥔 인물은 바로 배우 마동석이 열연한 '길가메시'입니다.

 

그는 수트의 첨단 화력이나 마법이 아닌, 주먹에 강력한 에너지를 둘러 데비안츠의 뺨을 때려 눕히는 마동석 특유의 묵직하고 원초적인 물리적 액션 쾌감을 MCU 세계관 안에 완벽하게 연착륙시켰습니다.

 

하지만 길가메시라는 캐릭터가 진짜 위대한 이유는 무력의 강함이 아닌 그가 품은 깊은 '이타심과 따뜻함'에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와 기억의 과부하로 인해 아군조차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우울증 상태의 '테나(안젤리나 졸리 분)'를 모두가 격리하려 할 때, 길가메시는 영원한 세월 동안 그녀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돌보는 보호자의 삶을 자처합니다. 거대한 우주 제국의 파멸이라는 거창한 명분 뒤편에 묻히기 쉬운 '소중한 동료를 향한 헌신과 다정함'이라는 지극히 보소적인 인간적 가치를 온몸으로 증명해 낸 것입니다. 그렇기에 중반부 테나를 구하고 비장한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최후는, 관객들의 마음에 가장 깊고 묵직한 정서적 페이소스와 눈물샘을 자극하는 최고의 명장면으로 각인됩니다.

2. 신들의 실존적 딜레마, "우리는 무엇으로 정의로운가"

영화의 핵심 클라이맥스인 이카리스(리처드 매든 분)와 세르시(젬마 찬 분)의 신념적 격돌은 매우 숭고한 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이카리스는 창조주 셀레스티얼의 명령이 곧 우주의 절대적인 정의이자 순리라 믿으며, 더 큰 우주의 탄생을 위해 지구의 소멸을 묵인하는 맹목적인 종교적 신념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반면 세르시는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이 비록 전쟁을 일삼고 서로를 증오할지언정, 그 안에서 사랑을 피워내고 예술을 창조하며 연대하는 인간 고유의 '존엄성과 문명의 가치'를 믿습니다.

 

양측 모두 확고한 당위성을 쥐고 펼치는 이 슬픈 내전은, 영웅들이 악당을 징벌하는 일차원적 서사를 넘어 '절대적인 신의 섭리 앞에 나약한 인간의 삶은 과연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가'에 대한 실존주의적 철학관의 충돌로 극을 격상시킵니다. 마지막 순간, 인간을 사랑했던 아내 세르시의 눈빛 앞에서 자신의 신념이 무너진 이카리스가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태양을 향해 날아가 스스로 소멸을 택하는 결말은, 신화 속 '이카루스'의 비극을 영리하게 직조해 낸 완벽한 정서적 잔상을 남깁니다.


핵심 요약 및 추천 가이드

추천 대상

  • 기성 마블 특유의 유치하고 정형화된 공식을 과감히 탈피하여 신화적 딜레마, 가치관의 대립, 묵직한 인간 드라마의 깊이를 느끼고 싶으신 분
  • 노을빛의 광활한 대자연 미장센과 실제 아날로그 카메라 앵글이 주는 세련되고 서정적인 미학적 시각 효과를 선호하시는 분
  • 배우 마동석이 우주적 영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보여주는 카리스마 넘치는 액션과 따뜻한 휴머니즘의 앙상블을 감상하고 싶으신 분

비추천 대상

  • 어벤져스 시리즈처럼 시종일관 가볍고 유쾌한 유머 코드가 터지며, 빠른 템포로 화려한 타격 위주의 쉼 없는 볼거리만을 기대하시는 분
  • 영화 바깥의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 담론의 강조나, 많은 캐릭터들의 등장으로 인해 분산되는 산만한 서사 구조에 피로감을 느끼시는 분

마치며

영화 이터널스는 관객들이 가장 안전하게 즐길 수 있었던 마블의 안온한 롤러코스터에서 내려와, 거친 사막 위에 서서 밤하늘의 은하계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낯설고 외로운 도전이었습니다. 비록 방대한 정보량의 과잉과 전개의 산만함으로 인해 상업적인 대중성을 완벽하게 사로잡지는 못했을지언정, "마블 유니버스 안에서도 인간의 존재 가치와 신의 도덕적 책임을 이토록 처절하고 아름답게 고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해 낸 시도만큼은 MCU 역사상 가장 독보적이고 품격 있는 터닝 포인트로 남기에 충분합니다.